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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및 지속 가능한 빈집 활용 방안

폐가를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전환하는 혁신 사례

by shine nana 2025. 6. 6.

 

 

1. 폐허에서 생명으로: 도시재생과 지속가능한 전환의 시발점

도시 곳곳에 흉물처럼 방치된 폐가는 오랫동안 공동체의 불안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도시재생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이러한 공간들이 새로운 기회로 조명받고 있다. 특히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의 전환은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적 전환과 순환경제 구축이라는 더 넓은 목표와 연결된다. 폐가의 구조는 종종 기존 건축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를 리노베이션하여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면 초기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유한 공간미를 살릴 수 있다.

순환경제 측면에서 폐가는 가장 적절한 실험 대상이다. 새로운 공간을 짓는 대신 기존 구조물을 활용하는 방식은 자재 낭비를 최소화하고, 건설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전체 건축물의 30% 이상을 ‘제로에너지 건물’로 전환할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폐가 활용이 중요한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 겐트(Ghent)에서는 100년 된 붕괴 직전의 창고를 리노베이션하여 'Circular Kickstart Hub'라는 청년 녹색창업 허브로 바꿨다. 이 공간은 폐건축 자재로 단열 구조를 재구성하고, 폐열 회수장치 및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도입해 건물 자체가 환경교육 플랫폼 역할까지 수행한다.

국내에서도 유휴공간 재생을 통한 창업 인큐베이팅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성수동은 원래 섬유 및 금속 산업단지였지만, 최근 몇 년간 폐공장을 개조한 친환경 스타트업 오피스와 공유주방, 실험실 등이 들어서면서 ‘서울형 순환경제 클러스터’로 재탄생하고 있다. 폐가의 물리적 전환을 통해 지역 내 고용, 기술 혁신, 환경 감수성 제고라는 복합 효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결국, 폐가란 도시가 겪은 쇠락의 흔적이자, 미래를 위한 **회복력(resilience)**의 기초 자산이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창업을 키우는 인큐베이터의 기능은, 단지 공간의 제공을 넘어서 도시의 생태와 사회를 복원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

2. 기후기술의 테스트베드: 클린테크 스타트업의 실험장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는 기술혁신과 생태적 가치 창출이 교차하는 기후기술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폐가는 첨단 기술과 친환경 개념을 시험하고 적용하기에 적합한 ‘비정형’의 공간이다. 기존의 판에 박힌 오피스 공간이 아닌 만큼, 스타트업들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실험 환경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클린테크(Clean Tech) 분야에 매우 유리하다. 폐수처리, 태양광, 수소연료, 스마트 에너지, 미생물 기반의 바이오 시스템 등 각종 실증 테스트가 실제로 가능한 ‘물리적 샌드박스’인 셈이다.

프랑스 파리 인근 생드니(Saint-Denis) 지구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버려진 철도 정비창을 재활용해 ‘Le Shift’라는 녹색 기술 테스트베드로 재탄생했다. 이 공간은 태양광 기반의 자가발전 시스템, AI 기반 에너지 절약 알고리즘, 바이오플라스틱 파일럿 공장, 도시농업 실험 공간 등을 동시에 운영하며, 기술과 공간이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폐가 기반 기술 실험장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기업들에게도 이상적인 성장 거점이 된다.

또한 이러한 공간은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전환을 실질적으로 가속화하는 장점이 있다. 스타트업들이 폐건물에 자체적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건물 단위의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는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실험함으로써, ‘소형 자급형 에너지 시스템’의 실제 구현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실제로 영국 브리스톨의 'Future Leap Hub'는 폐창고에 설치된 태양광-배터리-AI 전력관리 시스템으로 연간 80% 이상의 에너지 자립률을 달성하며, 중소기후기술 기업의 기술력을 시장과 연결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 주도 하에 ‘기후기술 실증 클러스터’ 조성이 논의되고 있으며, 노후 공공건물이나 빈집 등을 리모델링하여 그린뉴딜의 실천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 기술 창업과 국가 에너지 전략이 만나는 실질적 융합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결국, 폐가를 인큐베이터로 활용하는 모델은 ‘낡은 공간에 미래 기술을 이식하는 실험’이자, 탄소중립 시대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폐가를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전환하는 혁신 사례

 


3. 공동체의 힘, 공간의 사회적 재해석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는 단순한 기술창업의 공간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폐가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은 지역 주민들에게 정서적 울림을 주며, 스타트업 생태계와 지역 커뮤니티의 결합을 촉진한다. 이러한 ‘공간의 사회적 재해석’은 공동체 기반 창업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이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는 일본 도야마현의 ‘Little Tokyo’ 프로젝트다. 이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방치된 빈집이 수십 채에 달했는데, 지역 청년 단체와 사회적기업들이 손을 잡고 폐가를 친환경 창업 공간, 공공부엌, 마을 도서관, 커뮤니티 카페로 전환했다. 여기에 들어선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지역을 위한 비즈니스’를 지향한다. 예컨대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은 농가에서 폐기 예정이던 작물을 활용해 건강한 간식을 개발하고, 주민들과 공동 수익을 나눈다. 이는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서 지역 자원과 사람을 연결하는 경제 생태계로 기능하며, 기존의 ‘창업’이라는 개념에 공동체적 가치를 더한 사례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의 ‘폐광지역 자활형 창업 공간’은 지역 자활센터와 협업해 버려진 광산 마을 회관을 청년 창업자들의 에코 창업 인큐베이터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농촌형 수소 생산 시스템, 지역 폐기물 순환소재 개발, 생분해 포장재 스타트업 등이며, 지역 어르신들이 자원 재활용 공정에 직접 참여하고, 수익의 일부를 마을공동기금으로 환원하는 구조다. 이처럼 폐가라는 공간은 기술과 지역, 창업과 공동체가 상생 모델로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의 무대다.

또한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 공간은 사회적 기업 및 청년 협동조합에게 필수적인 ‘물리적 안착’을 제공한다. 임대료 부담 없이 실험과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주어질 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비즈니스가 탄생한다. 폐가는 그 자체로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social buffer)**이자, 진입 장벽을 낮추는 창업 인프라가 된다. 특히 기술 중심 창업보다 사람 중심의 사회적경제 창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폐가 인큐베이터가 감정적 공감과 지역 연대가 융합된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다.

궁극적으로 폐가를 사회적 목적의 창업 허브로 전환하는 일은, 창업 생태계가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도시 공간이 단순한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변화 중심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4. 제도와 정책, 녹색 생태계의 기초를 설계하다

폐가를 녹색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책적 뒷받침과 제도적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창업자 개인이나 시민 사회의 노력만으로는 공간 확보, 리노베이션 자금, 운영 지속성 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간 국내외 도시들은 유휴공간을 전략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지원책을 정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는 ‘스타트블럭(Startblok)’ 정책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폐건축물에 대해 ‘임대보증형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우선매입제도’를 도입했다. 시 당국이 유휴 부지를 매입하여 저렴하게 개방하고, 사회적 기업이나 친환경 창업자들에게 리모델링 자금 일부를 보조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녹색 기술의 실증 성과는 시가 요구하는 도시환경 정책과 연계되어, 해당 스타트업은 기술을 개발함과 동시에 도시의 지속가능성 전략에 직접 기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서울시는 ‘빈집 활용 도시혁신 지원조례’를 통해 1년 이상 방치된 폐가를 시민, 창업자, 협동조합이 임대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행정·재정 지원을 제공 중이다. 또한 환경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공동으로 ‘녹색기술 스타트업 테스트베드 사업’을 통해 폐공공시설, 군부대 유휴건물 등을 기후기술 실증 공간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공공 주도의 공간 기반 그린 인큐베이팅 정책은 지역 균형 발전 및 탄소중립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정책은 단발성 지원을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운영모델’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공소유+민간운영+지역참여’의 3중 협력 모델을 채택하여, 공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부산 사하구에서는 시민이 발굴한 폐가에 대해 행정이 리노베이션 예산을 지원하고, 민간 기업이 기술 기반 창업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가 함께 설계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은 단순한 창업 공간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거버넌스 실험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폐가 인큐베이터의 가능성은 물리적 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법·정책·행정의 생태계에 달려 있다.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폐가는 더 이상 낡고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녹색전환을 이끄는 실험적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